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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 전시

신용하문고 기념전
《진리는 나의 빛: 화양 신용하의 학문과 장서》

전시명 신용하문고 기념전
《진리는 나의 빛: 화양 신용하의 학문과 장서》
전시기간 2026.05.15 ~ 2026.09.20
접수기간 ~
전시장소 중앙도서관 본관 4층 서울대학교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보이는 수장고
문의처 02-880-5266
전시요약 관악의 녹음이 더없이 빛나는 5월, 중앙도서관은 화양 신용하 선생의 학술 업적과 기증 문헌을 널리 소개하기 위해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2017년 설치된 신용하문고는 상백문고(想白文庫)와 더불어 한국을 대표하는 제1세대 사회학자의 기증 문고로, 한국 사회학이 어떠한 지적 배경을 바탕으로 형성·발전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적 원천이 됩니다.
이번 전시는 신용하문고의 장서 중 그간 미공개되었던 서양 고문헌을 한자리에서 조망하고, 장서 수집의 동력이 되었던 학문적 여정을 도표와 문헌을 통해 입체적으로 고구합니다.
아울러 그가 심혈을 기울여 밝혀낸 독도 문제의 실증 자료인 옛 지도를 처음으로 선보임으로써 실사구시학의 대가이자 장서가로서의 신용하선생의 면모를 새롭게 마주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중앙도서관 개인문고의 아름다운 전통을 되새기는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시 소개

신용하문고 기념전 《진리는 나의 빛: 화양 신용하의 학문과 장서》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은 특별전 《진리는 나의 빛: 화양 신용하의 학문과 장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새롭게 조성된 헤리티지 라이브러리 보이는 수장고를 활용하여, 한국학 연구의 거장 화양(禾陽) 신용하(愼鏞廈, 1937~ ) 선생의 학술 업적과 기증 문헌을 널리 소개하고자 마련되었다.

신용하는 민족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사, 한국사회사상사, 근대사회 형성사, 민족운동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남겼다. 특히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고 한국 사회가 주체적으로 근대사회를 형성한 역사적 과정을 밝히는 데 기여하였으며, 한국사회사학회를 설립하여 사회학과 역사학의 학문적 가교를 놓고자 힘썼다. 또한 독도 연구와 보존 운동에도 앞장서며 실천적 지성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전시는 신용하의 생애와 학문 세계, 독도 연구 활동, 신용하문고의 서양 고문헌 등 크게 네 개의 주제로 구성된다. 그의 방대한 연구 업적과 학문적 여정을 도표와 문헌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화양 신용하 학술의 탑’ 설치를 통해 반세기 넘게 이어진 연구의 궤적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독도 관련 고지도와 문헌 자료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그중 18~19세기 일본과 프랑스에서 제작된 지도들은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보여주는 실증 자료로, 하야시 시헤이의 『삼국통람도설』 등 주요 자료를 통해 독도 지킴이로서 신용하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신용하문고 소장 서양 고문헌도 함께 소개한다. 신용하문고는 1900년 이전 발간된 서양 고문헌 786종 981점을 포함해 총 8,631점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사회학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학문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전시에서는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철학강의』를 비롯한 희귀 고문헌을 통해 서구 지성사와 사회학의 형성 과정을 함께 조망한다.

이번 전시는 2023년 3월 <신입생 비상전 飛上展>을 시작으로 출발한, 중앙도서관 기록유산의 사회적 공유를 위한 전시 기획의 여섯 번째 결실이다. 전시 기간동안 상세 브로슈어를 배포하여 신용하 선생의 학문 세계와 기증문헌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

※ 도서관 출입 규정에 따라 만 19세 이하는 전시 관람이 어렵습니다. 서울대학교 외부 구성원은 중앙도서관 본관 4층 출입구에서 실물 신분증 제출 후 일일출입증 수령하시어 전시 관람이 가능합니다.

전시 개요

세션 1. 신용하문고로 본 서구 지성사와 사회학사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탐구해온 신용하는 사회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서구 지성사와 사회학사에 대한 이론적 관심을 견지하여, 서구 학계의 주요 연구를 번역, 소개하는 데 힘썼다. 대표적 예로 루이스 코저의 『사회사상사』는 1978년 일지사에서 초판이 발행된 이후 오늘날까지 사회학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

이와 같은 학적 관심은 서양 고문헌에 대한 수집으로 이어져 신용하문고에는 중세에서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를 거치는 서양의 고전들, 특히 사회과학이 형성될 무렵의 주요 사상가들의 저작과 사회학 관련 서적이 망라되어 있다. 1569년에 출판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라틴어본을 비롯하여 미국의 사회학자 프랭클린 기딩스의 주저 『민주주의와 제국』 1900년판에 이르기까지 19세기까지 발간된 서양 고문헌을 도합 786종 981점 보유하고 있다.

그간 미공개되었던 신용하문고의 서양 고문헌을 통해 서구 지성사의 거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일어난 사회학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가늠해보자.

세션 2. 독도 지킴이 화양 신용하

일본 정부의 독도 침탈 시도에 대항하여, 신용하는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밝히는 데 연구자로서 그리고 현실에 참여하는 실천적 지성으로서 독보적 업적을 남기었다. 먼저 1980년대 규장각도서관리실장을 맡으면서 서울대에 소장된 독도 관계 지도와 문헌을 대거 발굴하여 1차 사료에 근거해 독도영유권에 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이론적으로 반박하고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었다. 또한 20권이 넘는 저술과 번역을 통해 독도 문제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널리 전파하였다.

이어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에서 독도가 중간 수역으로 설정되자 독도연구보존협회 회장으로서 ‘독도수호 대일규탄 결의대회’와 ‘독도영유권 대토론회’ 등을 개최하는 등 독도영유권을 지키기 위한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학적 노력과 사회활동으로 인해 그에게는 ‘독도 지킴이’라는 별명이 지금도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

그 밖에도 신용하는 민족운동사·독립운동사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독립기념관 건립 기획위원과 독립운동사연구소 초대소장을 역임하였고, ‘국민학교’의 ‘초등학교’ 개칭, (구)조선총독부건물 철거, 이완용 명의의 토지재산 처리 등 일제강점기의 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세션 3. 지도로 만나는 우리땅 독도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영토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자료 가운데, 특히 고지도는 독도가 고래로부터 우리 영토에 속해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독도는 삼국시대 울릉도에 있던 우산국(于山國)에 복속되었고, 우산국은 곧 신라에 복속되었으므로 우리땅이 분명하였다. 이후 조선시대까지 독도는 ‘우산도(于山島)’라고 불렸는데, 고지도에서는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서 ‘천산도(千山島)’․‘자산도(子山島)’ 등으로도 표기되기도 하였다. 20세기 이전에 이미 ‘독도(獨島)’라고 불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예전부터 울릉도를 ‘다케시마(竹島: 죽도)’, 독도를 ‘마쓰시마(松島: 송도)’라고 일컬었는데, 1905년 전후 독도가 주인 없는 섬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명명하고 일본 영토에 편입시켰다. 2차 대전 패전 후 독도가 한국에 반환되자 지금까지도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및 제3국에서 제작된 고지도에서 독도는 ’송도‘가 아닌 ’우산도‘로 표기되어 있으며 조선의 관할 지역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표적 예로, 1785년 일본의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저술한 지리서인 『삼국통람도설(三國通覽圖說)』를 보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과 같은 색으로 칠하고 ‘조선의 소유이다(朝鮮ノ持也)’라고 명시하였다. 이와 같은 사료로 보건대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라는 것은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세션 4. 진리를 향한 학문적 여정

독립협회 연구
신용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맞서 한국근대사에서 시민적 민족주의와 자주민권운동의 실재를 입증하려는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독립협회에 관한 연구에 혼신을 힘을 기울였다. 1차 문헌 자료를 면밀히 조사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독립협회의 창립과정 및 조직적 특징, 자유민권자강운동과 만민공동회 활동을 체계적으로 재구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이 이미 19세기 말에 근대국가와 시민사회를 수립할 수 있는 내적 동력을 갖고 있었음을 입증하였다.

한국사회사 연구
한국사회사를 학문적으로 정립하여 역사학계의 무이론적 경향과 사회학계의 몰역사적 편향을 극복하고, 우리 한국학의 학문적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부분 사회사가 아닌 경제사·정치사·문화사 등을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전체사로서의 사회사’를 지향하였으며, 구조사적·장기사적 관점을 바탕으로 하여 동학농민혁명운동·애국계몽운동·3·1운동·민족독립운동 등에 대한 사회학적·역사학적 분석을 수행하였다.

한국 사회사상 연구
구조사적·장기사적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역사변동에서 사상이 수행하는 역할을 중시하여, 정약용·이익·박지원의 실학사상과 오경석·김옥균의 개화사상, 박은식·신채호·안창호·주시경의 삶과 사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집단·민중의 역할과 지식인의 역할이 서로 상보적 관계임을 밝혀내고, 근대 한국 지식인들의 사상에 대한 개별적 연구를 축적하여 거시적으로는 한국의 근대사회사상사를 구축하였다.

민족형성의 사회학 연구
민족문제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의 폭을 확장하여, 고고학·언어학·문화인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 결과를 참조해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종합적 연구를 수행하였다. 서구의 '근대민족'과 구별되는 '전근대민족'과 ‘원민족’ 개념을 제시하고, 고대국가 고조선을 중심으로 한국 원민족의 역사를 탐구하였다. 반세기를 넘어 부단히 확장, 심화되어온 그의 연구는 학문의 경계를 넘어 아직도 실험과 도전의 항해를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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