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헌학회(日本文獻學會) 총간(叢刊)의 제1회 간본으로, 300부 한정으로 출판되었다. 이른바 ‘대동아전쟁’의 조칙을 받들어 ‘황군’이 충용의열(忠勇義烈)로써 ‘신동아 건설’의 초석을 공고히 하고 있는데, ‘황국’의 학문에 종사하는 자들도 그 전공에 노력하고 매진하여 천황의 은혜와 국가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해야 한다고 해서 1942년에 조직된 것이 일본문헌학회라고 한다. 일본문헌학회에서는 고전의 복제와 활자화, 옛 학문의 연구와 현창에 관한 사업을 시행하여 ‘황국문화의 선양’에 보탬이 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일본서기』 전권을 복제한 것이 아니며, 신대권(神代卷)이라 불리는 신화 시대의 일을 기록한 권1, 권2에 해당한다. 이 책의 두 번째 권에 실려 있는 일본문헌학회 대표 사사키 노부쓰나(佐佐木信綱)의 ‘서(序)’를 보면, 권2의 끝부분에 적힌 겐나(劍阿)의 글 중 ‘우리나라는 신국(神國)이다. (중략) 우리나라는 또한 부처의 땅이다. (중략) 적국이 침범하지 못하고, 반역하는 신하가 기울게 하지 못한다. 따라서 동쪽으로 숙신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고려를 항복시키며, 서쪽으로 신라를 사로잡고, 남쪽으로 오회(吳會)를 신하로 삼았다. 삼한이 입조하였고, 백제는 내속(內屬)하였다. 범엽의 『후한서』에 이르기를 군자의 나라라 하였고, 당 황제는 그 화황(和皇)의 존귀함을 받들었다’는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내존외비(內尊外卑)의 사상을 명시한 것이라 하며, ‘대동아성전의 한가운데서 적국 섬멸의 대업이 날로 진척되는 때에 이르러’ 이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해당 학회에 의한 간행 사업 중 『일본서기』의 복제본이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단순히 학문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시대적 상황도 그 배경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사키의 서문 뒤에는 다야마 노부오(田山信郞)가 해당 책에 대한 해설과 그 의의를 서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복제 대상인 신대권은 미토 번(水戶藩)의 도쿠가와 가문에 소장되어 있던 것으로서 미토본(水戶本)이라 불리고, 역사서 『대일본사』 편찬을 위해 미토 번에 설치된 쇼코칸(彰考館)의 장서라고 하여 쇼코칸본(彰考館本)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도 미토의 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가마쿠라본(鎌倉本)이라고도 불리며, 간기(刊記)에 적힌 가랴쿠(嘉曆) 3년(1328)이라는 연도에 기인하여 가랴쿠본(嘉曆本)이라고도 한다. 미토본 신대권은 1328년 5월 17일에 선승 돈슌(曇春)이 겐나(劍阿)가 갖고 있던 책을 직접 필사한 것임을 간기를 통하여 알 수 있다. 현재 『일본서기』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9~14세기 옛 사본들은 여러 종류가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다. 미토본 신대권은 오래된 사본 중 하나로서 귀중한 가치가 있고, 고전 연구와 국어학 등의 방면에서 큰 의의를 지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미토본은 1920년, 일본서기 편찬 1200년 기념으로 간행된 『일본서기고본집영(日本書紀古本集影)』(청구번호 4130 42)에서 일부가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1943년 6월에 문부성 국보보존회에서 미토본을 국보로 지정하기로 의결함에 따라 일본문헌학회에서 복제 출판을 기획하고 공작 도쿠가와 구니유키(德川圀順)의 허락을 받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에서 만나는 일본 고중세사 자료(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