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제국대학 법학회(이하 법학회)가 1937년 5월에 발간한 연구논문집이다. 1934년 법학회가 출범한 이후 세 번째로 출간된 논집이며, 경성제국대학 법문학회(이하 법문학회)의 제1부 논찬(論纂)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아홉 번째 논집이다. “제9책”이라는 권호는 여기서 유래한다. 법학회는 “법률, 정치, 경제에 관한 諸學의 연구 및 보급을 목적으로 하며, 논집, 총간, 번역총서의 출판, 강연회 개최 등”의 사업을 하는 단체로 규정되었는데, 경성제국대학의 총장과 법문학부장이 법학회의 회장, 부회장을 맡았지만 명예직일 뿐이고, 실질적인 운영은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들의 호선에 의해 선출된 평의원장 및 3인의 위원이 관할하고 있었다. 평의원장은 로마법강좌 교수였던 후나다 교지(船田享二), 위원에는 외교사강좌 교수 오쿠다이라 다케히코(奧平武彦), 경제학제2강좌 교수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 상법 제1강좌 교수 다케이 기요시(竹井廉)가 맡았다. 법학회의 여러 사업 중에서도 논집은 경성제국대학 교수들의 연구 성과를 정치, 법률, 경제 등의 분야로 묶어서 비교적 정규적으로 발간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의 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연구 성과이며 식민지 조선의 학계에서 사실상 가장 권위 있는 학술간행물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었다고 하겠다. “조선사회경제사연구”라는 부제가 달린 이 연구논문집은 4편의 논문만 실렸지만, 본문만 530페이지로 각 논문이 거의 작은 단행본에 육박하는 분량이다. 제일 먼저 수록된 「고려율(高麗律)」은 고려사(高麗史) 형법지(刑法志) 등의 사료를 근거로 고려시대의 성문형법인 고려율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립시기, 법제사적인 특징을 규명한 논문으로, 당시 “형법형사소송법 제1강좌”를 담임했던 하나무라 요시키(花村美樹)가 집필했다. 법문학부 법학계열의 교수들 중 대부분이 경성제국대학의 성립과 더불어 식민지 조선에 부임했던 데 반해, 하나무라는 도쿄제대 법률과를 졸업했던 1918년부터 조선총독부 사법관으로 부임해서 판사로 활동했던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성제대 부임 이전부터 법제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19년 이후 조선총독부가 구관조사사업의 일환으로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고법전의 정리간행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대명률직해大明律直解와 추관지秋官志의 교정 및 훈점 작업을 담당했다. 이 논문은 이러한 작업의 연장선에서 수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법제사강좌 교수인 나이토 기치노스케(內藤吉之助)의 논문 「경국대전의 난산(經國大典の難産)」도 마찬가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이 주도했던 구관조사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연구로, 문종 원년 1451년에 착수되어 성종 원년 1470년에 경국대전이 완성, 반포되기까지 20년에 걸친 지난했던 성립 경위와 법전의 특징을 조선왕조실록에 근거해서 설명하고 있는 논문이다. 일본에서는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및 국가의 기원의 번역자로 더 유명한 나이토는 하나무라와 같이 구관조사에 참여하여 경국대전, 속대전 등에 대한 교정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조인구에 관한 일 연구(李朝人口に關する一硏究)」는 당시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규장각 도서 중 약 250부 가까운 호적장책(戶籍帳冊)에 주목하여, 그 중에서 숙종대의 대구호적에서 나타나는 인구구성, 혼인관계, 가족 및 부락의 상황, 그리고 노비문제를 분석한 논문으로, “경제학 제1강좌”를 맡고 있던 시카타 히로시(四方博)가 집필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조약항과 거류지(朝鮮の條約港と居留地)」는 강화도조약에서부터 러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조약에 의해 개항을 약속한 조약항의 역사를 1882년 조중상민수륙무역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의 체결과 1895년 청일전쟁을 분기로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분석한 논문으로, 앞서 법학회 위원으로 호선되었던 오쿠다이라 다케히코가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