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상세 결과

이전 결과로 돌아가기

龍飛御天歌[歌詞] / [小倉進平].

서지정보

서명 龍飛御天歌[歌詞] / [小倉進平].
편저자 Ogura, Shinpei.
판사항 謄寫.
발행사항 [S.l. : 小倉進平, 1928]
형태사항 1冊. ; 25 cm.
언어 한국어 (kor)
 

해제

본문
『龍飛御天歌[歌詞](용비어천가)』는 의 국문 가사와 한역시만을 수록한 등사본이다. 등사본은 철필로 원고를 베껴 쓰고, 등사기에서 잉크를 발라 인쇄한 책을 말한다. 총 37장의 1책으로, 책의 크기는 26.2X18.9cm이다. 표지에는 ‘龍飛御天歌歌詞’(용비어천가 가사)라고 되어 있고, 내용과 표지를 검은 테이프로 접착해 놓은 형태이다. 표지 안쪽 왼쪽 하단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가 기증한 도서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이 책은 오구라 신페이의 기증을 받아 경성제대 도서관에서 소장하게 되었다. 속표지에는 ‘龍飛御天歌’라는 표제가 있고, 속표지의 뒷면에는 ‘京城帝國大學圖書章’이라는 소장인이 있다. 별도의 판권지는 없다.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에도 동일한 책이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오구라문고 소장본에 비해 경성제대 도서관 소장본의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책의 마지막 장에 오구라 신페이의 간단한 후기가 남아 있다. 本書刊本得(え)易(やす)カラズ、會々(たまたま)朝鮮古書刊行會本アルモ誤植ニ滿ヶ信ヲオクニ足(た)ラズ。特(とく)ニ□文綴字ノ□ニ於(おい)テ然(しか)りトス。今□ニ本書中歌詞ニ属(しょく)スル部分ノ三ヲ謄写(とうしゃ)ニ附(ふさ)レ、語学研究者ノ便(べん)ニ借(か)ス <昭和三年一月小倉進平> 이로 보아 이 책의 등사 시기는 1928년(昭和 3)으로 추정된다. 조선고서간행회본의 오식이 많아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신뢰할 만한 저본을 바탕으로 가사에 해당하는 부분을 따로 등사하여 어학 연구자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의도에서 등사한 것으로 보인다. 오구라 신페이가 등사의 저본으로 삼은 ‘本書’의 판본이 어느 것인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本書’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저본으로 한 자료를 남기고자 한 것이다. 오구라 신페이가 언급한 조선고서간행회본이란 1911년에 간행된 『용비어천가』를 말한다. 이 본은 『용비어천가』 활자본으로서는 최초의 것이지만, 잘못된 글자가 많다. 이후 1938년에 경성제대 법문학부에서 만력본(1612)을 저본으로 영인하여 비로소 『용비어천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조선고서간행회는 샤쿠오 슌조(釋尾春仍)가 1908년에 설립했다. 그는 오카야마(岡山) 출신으로, 도요(東洋) 대학을 졸업했다. 1900년에 조선에 온 뒤 부산 개성학교, 대구 일어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경성민단(京城民團) 제1과장으로 경성제일여고, 경성중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1907년 조선잡지사를 경영하며 잡기 『조선(朝鮮)』을 발행했다. 이듬해 조선잡지사 안에 고서 간행을 위해 ‘조선진서간행부’를 두고 조선의 역사, 제도, 지리, 문학 등에 관한 서적을 간행하기 시작했다. 이 간행 사업의 목적은 조선 통치를 위해 조선의 고문명을 조사하고 연구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의 역사와 민족성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조선고서간행회에서는 총 28종 83책의 고전을 『조선군서대계(朝鮮群書大系)』로 간행하였다. 사료 조사라는 목적에서 조선의 고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간행하였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조선군서대계』 제24집인 『용비어천가』를 의미한다. 이로 보아 구하기 어렵고, 좀 더 신뢰할 만한 저본은 이전의 목판본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다. 오구라 신페이의 조선고서간행회본 『용비어천가』에 대한 불신은 쓰치다 교손(土田杏村)과의 향가 형식 논쟁에서도 그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1929년~1930년에 걸쳐 논문을 통해 향가의 형식에 관해 논쟁한 바 있다. 이때 오구라 신페이는 쓰치다 교손의 음수를 계산하는 통계적 방법론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였다. 특히 쓰치다 교손이 조선고서간행회본 『용비어천가』를 저본으로 선택하여 ‘전권에 오류가 가득해 학술적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다.’, ‘한가지 예를 들면 제60장의 제8구는 원본이 5자이지만, 조선군서대계본은 이 중에 1자를 2자로 잘못 나눠 6자가 되었다. 이 책을 대본으로 삼은 쓰치다 씨는 틀림없이 6자로 계산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건 지극히 적은 예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예가 도처에서 확인되기에 이를 전부 헤아린다면 쓰치다 씨의 결론을 위태롭게 할 만한 사실에 도달할지 모른다.’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쓰치다 교손은 오구라 신페이의 견해에 반박하면서 『조선군서대계』는 조선고서간행회가 감수하고,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총독의 찬조를 얻어, 조선 조정과 민간의 여러 학자, 조선 연구의 전문가 등이 십수년 간 협력하여 만든 대규모 총서로서 신뢰할 만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조선군서대계』에 수록된 『용비어천가』는 문학박사인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의 개인소장본을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가와이 히로타미가 해제를 쓰기도 했다. 물론 오류가 있겠지만, 전혀 가지가 없는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또한 오구라 신페이가 말한 오류를 발견하기까지 777자를 검토해서 겨우 1자의 차이를 발견한 것은 통계적으로 상쇄 가능한 부분이라고 보았다. 요컨대 오구라 신페이가 등사본을 따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을 만큼 조선고서간행회본 『용비어천가』가 자료로서의 가치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태도가 이 논쟁에서도 다시 확인되는 것이다.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는 동경제대에서 언어학의 학문적 기초를 쌓고, 조선총독부 관리로 부임하여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에 관한 기초자료를 조사・수집하였으며, 경성제대 및 동경제대 교수로서 그 축적된 기초 자료를 연구・정리하였다. 그 결과로 그는 일생동안 10여 편의 저서와 130편 정도의 논문 등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오구라 신페이의 생애는 대략 출생으로부터 동경제국대학 및 대학원에 재학한 시기인 제1기(1882~1910), 조선총독부관리. 외국 유학,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재직한 시기인 제2기(1911~1932), 일본으로 귀국하여 동경제대 교수(경성제대 교수 겸임)로 활동한 제3기(1933~1944)로 나눌 수 있다. 제1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오구라 신페이는 1903년 동경제국대학 입학하여 언어학을 전공하였으며, 1906년 7월 졸업논문으로 「헤이안 시대 말기까지의 음운 변천[平安朝末期に至る音韻變遷]」을 제출하고, 졸업 후 국어음연구실의 조수를 지냈다. 그 뒤 약 4년간 대학원에서 일본어학(음운사 전공)을 연구하였다. 제2기에 해당하는 1911년 5월부터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교유와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1917년 5월~1919년6월)를 겸임했고, 1919년 6월에 총독부의 편수관(編修官)이 되었다. 그는 교과용 도서 편수 및 검정에 관한 사무, 서무, 학사에 관한 시찰과 사무 및 통역 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이 시기에 오구라 신페이는 시간만 나면 조선의 지방을 돌아다니며 방언 조사를 하였으며, 고서, 고문헌을 이용한 조선어의 역사, 조선어 연구사에 관한 학술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수는 총독부 부임 후인 1912년부터 언어학연구를 위해 유학을 가는 1924년까지 12년 동안 총 44편에이른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모은 저작에는 『조선어학사(朝鮮語學史)』(1920)를 비롯하여 『일본어 및 조선어를 위하여(國語及朝鮮語のため)』 (1920), 『일본어 및 조선어 발음 개설(國語及朝鮮語 發音槪說)』(1923), 『조선 남부의 방언(南部朝鮮の方言)』 (1924)의 4권이 있다. 여기에 1924년에 탈고한 『향가 및 이두에 관한 연구(鄕歌及吏讀の硏究)』까지 포함하면 주요 업적은 조선총독부 관리시절에 대부분 이루어진 셈이다. 1924년부터의 유학은 학무국 편수관으로 재직한 채 재외 연구라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같은 해의 경성제국대학설립[1924년 예과 개학]에 동반된 것이었으며, 언어학 연구가 목적이었던 것도 2년 후 대학의 개학을 위한 것이었다. 즉 조선총독부에서는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과정에서 동경제국대학 출신자들을 교수로 내정한 후 서구의 유명대학으로 유학을 보냈는데, 오구라 신페이는 이에 따른 유학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26년 유학에서 돌아오자, 같은 해 개학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문학과의 조선어학・조선문학 제2 강좌 담당 교수로 임명되었다. 제3기에 해당하는 1933년에는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언어학과의 주임 교수로 옮겨갔는데 경성제국대학의 겸임 교수로 1년에 한 번 정도 집중 강의를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동경제대 및 경성제대에서의 강의와 대외 활동, 그리고 자신이 해 온 여러 과제들을 끊임없이 보완・정리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특히 동경제대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순수한 언어학의 강의를 꾸미고 학생 지도에 지나치게 고생했으며 그로 인해 몸이 약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자신의 방언 조사・연구를 집대성한 『조선어 방언의 연구(朝鮮語方言の硏究)』를 간행하려던 중에 건강을 너무 해쳐, 1943년 정년퇴임을 하고, 정년퇴직한 그 이듬해(1944년) 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李秉根2005: 34~35).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 있던 『조선어 방언의 연구』는 그의 제자인 시바타 다케시(柴田武, 1918~1997)에 의해 암파서점(岩波書店)에서 출간되었다. 이렇듯 평생에 걸쳐 한국어 연구를 했던 언어학자이기에 오구라 신페이는 일찍부터 『용비어천가』의 자료적 가치를 파악하고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훈민정음을 사용하여 간행된 최초의 문헌이다. 한글의 가장 오래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주해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 관직명의 한글 표기는 국어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가 된다. 오늘날에는 흔히 『용비어천가』라고 하면 125장으로 이루어진 악장의 가사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책은 각 장의 의미를 설명하는 해설 및 주석을 포괄하고 있다. 이 책에 나타나는 언어 사실 가운데 특징적인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표기법에 있어 ‘곶(2장)‚ 좇거늘(30장)‚ 깊고(34장)‚ 닢(84장)’과 같이 받침으로 8종성외에 ‘ㅈ‚ㅊ‚ㅍ’ 등이 더 쓰였다. 이러한 형태음소적 표기는 『월인천강지곡』의 표기법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월인천강지곡』에서 부분적으로 분철표기가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항상 연철표기만을 보여준다. 유일예이지만 ‘□□’에서처럼 체언 말음이 ‘ㆁ’인 경우에도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의 초성으로 내려쓴 점은 특징적이다. 또한 이른바 ‘사잇소리’라 부르는 속격 조사 ‘ㅅ’의 표기가 ‘兄ㄱ □디(8장)‚ 몃 間ㄷ 지븨(110장)‚ 사□ □디리□가(15 장)‚ 하□ □들(68장)‚ 님□ 말(98장)’과 같이 선행체언의 말음에 따라 ‘ㅅ’이외에 ‘ㄱ‚ㄷ‚ㅂ‚ᅙ‚ㅿ’ 등으로 구별되어 표기되었다. 이는 훈민정음언해에서도 나타난다. 음운면에 있어서는 우선 ‘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점을 들 수 있다. ‘글□ (26장)‚ 셔□ (18장)‚ □□□ (35장)’ 등은 직후에 간행된 『석보상절』 등에서는 ‘글왈‚ 셔울‚ □오□’로 나타나는 용례이다. 모음조화에 있어서는 한글 초기 문헌 가운데 가장 규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고유어 어간과 어미(또는 조사)의 결합에서 ‘업사(110장)‚ 연□니(7장)‚ 밧□ (89장)’의 몇 가지 예외가 있을 뿐 일률적인 모음조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형태면에 있어서는 계사 어간의 기저형 ‘*일-’과 관련된 ‘느지르샷다(100장)’의 예가 많은 주목을 받아 왔다. 어휘면에 있어서는 한문 주해 속에 있는 약 170여개 고유명사의 한글표기 용례가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지명표기인데 ‘쇼재(牛峴‚ 1: 31b)‚ 돌개(石浦‚ 1: 38a)‚ 조□□ (栗村‚ 2: 22b)‚ 고마□□ (熊津‚ 3: 15a)’ 등 고유어 俗地名을 보여준다. 그외에도 관북‚ 관서 지방의 지명‚ 인명‚ 직명에 남아 있던 ‘투먼(豆漫‚ 1: 8a)‚ 닌□시(紉出闊失‚ 7: 23b)’ 등의 여진어와 ‘터믈(帖木兒‚ 1: 43a)‚ 바톨(拔都‚ 7: 10a)’ 등의 몽고어는 특이한 자료가 된다. 『용비어천가』의 본문 판면을 살펴보면 각 장은 다음과 같은 구성 체계를 따른다. 먼저 국문 가사가 등장하고, 각 글자에는 성조를 나타내는 방점이 표시되어 있으며 구두점을 사용하여 구절을 구획하고 있다. 국문 시가에 관한 주석이 끝나면 한문으로 번역한 한시와 주석이 달려 있다. 해설문은 시가에 이어 행을 달리하여 한 글자를 내려쓰는 방식으로 한문으로 기록하되, 추가 해설이 필요한 경우 두 글자를 내려쓰는 방식으로 덧붙이기도 한다. 해설문에도 역시 필요한 경우 주석이 붙는다. 하나의 장이 끝나면 반드시 행을 바꾸어 약 세 칸을 내려쓰고 장 표지를 기록한다. 이렇게 구성된 부분 가운데 본 해제 대상의 문헌 『용비어천가』는 국문 시가의 가사와 번역 한시만을 실었다. 다만 국문 시가의 원문에는 방점 및 구두점을 살려서 수록하고 있어 국문 시가 작품을 어학 연구의 기본 자료로 삼고 있음이 확인된다. 경성제대 지식인과 한국문학(2022)

아이템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 권호사항 이용현황
10100285881 일사 811.51 Y8g 중앙도서관 헤리티지 라이브러리(개인문고) 이용가능
10100870498 일석 811.51 Y8g 중앙도서관 헤리티지 라이브러리(개인문고) 이용가능
10900047368 3320 2 중앙도서관 기록문화유산실(구장본 동양서) 이용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