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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山開港史 / 保高正記 編.

Yasutaka, Seiki.

서지정보

서명 郡山開港史 / 保高正記 編.
편저자 Yasutaka, Seiki.
Matsumura, Sukeyuki.
판사항 -
발행사항 郡山 : 群山府大和丁一番地, 大正14[1925]
형태사항 11, 338 p. : plates ; 22 cm.
언어 일본어 (jpn)
설명주기
『군산개항사(群山開港史)』는 군산이 개항되던 1899년부터 1925년까지 군산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한 군산의 현황을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종교 등 각 항목으로 분류하여 저술한 책이다. 저자인 호타카 마사키(保高正記)는 도시샤(同志社) 대학 출신으로, 일찍이 군산이 개항되던 1899년 무렵 인천에 있는 호리히사(堀久) 상점의 점원으로 군산에 왔으며, 상점이 폐점된 후에는 도자기 상점을 운영하며 언론 활동을 하였다. 책의 내용 중 ‘현재의 군산’에 해당하는 기사, 즉 신사, 학교, 교육회, 오쿠라 요네키치(大倉米吉) 씨의 사업, 사원, 기독교회, 후지(不二) 간척지 및 재판소 등의 연혁은 무라마쓰 유시(村松祐之)라는 사람이 주로 담당하였고, 그 외 항목에 대한 서사 평론은 모두 호다카가 썼다. 『군산개항사』 편찬의 이유에 대해서는 호다카의 자서(自序)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근세 각국 모두 지방자치제가 완비됨에 따라, 도시의 발달이 현저해지고 어떤 소도시라고 해도 그 유서 내력을 편찬하고 있지 않은 곳은 드물다. 또 현재 대규모의 조사 기관을 두고 수년의 시간을 쓰며 적지 않은 대금을 투입하여 그 완성을 기하고 있는 곳도 있다. 오늘날에는 도시의 역사 편찬 사업은 그 도시의 체면을 갖추는 한 요건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종래 군산에 관한 서책을 보면 ‘군산은 개항 전은 완전히 거칠고 쓸쓸한 하나의 한촌(寒村)으로 갈대가 무성하여 발 디딜 곳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상투어였다. 그러나 군산은 오늘날부터 273년 전 이조 효종 시대에 공미(貢米) 수납소였던 호남청(湖南廳)이라는 엄연한 관청이 설립되어서 조선의 재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던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군산 거주자이면서 군산의 오랜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곧 우리 집 문 앞을 잊은 어리석은 자와 다름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군산개항사’이지만 개항 이전 조선시대 군산의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조망하고자 하였다. 책의 첫머리에서는 개항의 전사(前史)로서, (1) 금강 유역의 사적 가치 (2) 공미제도의 연혁 (3) 화폐제도의 변천에 관한 세 편을 먼저 서술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였다. 즉 “개항의 기운을 촉진하고 또 오늘날의 군산을 끊임없이 먹이고 길렀던 금강 유역의 문화와, 군산이 조선 남쪽의 일각에서 쌀의 집산지로서 인정받았던 조선 중엽 공미제도의 연혁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조선 화폐 정리에서 군산은 항상 신·구화폐의 완충지가 되었고, 다른 개항장에서 볼 수 없는 특수한 지위를 점하고 있었음은 특필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군산개항사』의 전체적인 내용은 군산이 근대적인 항구 도시로서 개항한 이후의 역사를 교육회, 거류민회 등의 일본인 조직이나 철도, 항만 등의 근대 시설의 설치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군산의 과거와 현재까지의 발전 과정에 대한 것이다. 즉 군산의 시작점인 금강 주변의 역사적 가치에서 시작하여, 전근대 조선의 공미(貢米) 제도와 화폐 제도, 개항 이후 각국 거류지회와 일본 거류민단, 군산 이사청의 연혁, 러일 전쟁 전후 군산의 농업 경영과 군산 상업 회의소 활동, 군산항 매축(埋築) 문제와 호남 철도, 군산의 미곡상 조합과 군산 미계(米界), 수산업과 해운 현황 등을 주로 다루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군산은 평안남도 진포와 전라남도 목포가 개항된 이듬해인 1899년 5월에 경상남도 마산, 함경북도 성진과 함께 개항되었다. 개항한 군산은 금강 하구에 위치하여 전라북도 관할에 속하였다. 그러나 그 상업권이 전라남도와 충청남도 일부에까지 미쳐 조선 제일의 미곡(米穀) 집산지로서 ‘쌀의 군산’이라 불렸다. 경제 관련 내용을 보면, 1905년 8월에 경부 철도가 개통되면서 충청남도 강경을 중심으로 한 재래 상권은 큰 타격을 받는다. 철도 개통 이전에 군산항으로 수입되던 일상 용품의 80%가 강경 시장을 거쳐 판매되었는데, 철도 개통 이후에 충청남도 공주 동쪽 연기 이남 지역이 모두 철도의 세력권에 흡수되는 바람에 강경은 금강 하류 대부분의 고객을 잃게 되었다. 『군산개항사』가 집필되던 1925년 3월 현재 군산항의 인구는 일본인 7,198명, 한국인 14,636명으로 전체 인구 중에서 일본인이 30%를 차지할 정도로 다른 도시와 비교할 때 월등히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였다. 따라서 도시의 명칭 또한 일본과 같이 1조통(條通)에서 9조통으로 되어 있었다. ‘쌀의 군산’인 만큼 도시의 각종 산업 시설 역시 쌀과 관련된 농사 조합, 미곡상 조합, 곡물 시장, 미곡 신탁 주식회사, 정미업, 상업 회의소, 세관 등으로 채워졌다. 이들 시설은 오쿠라 농장(大倉農場)을 비롯해 군산 인근의 일본인 대지주들이 경영하는 각종 농장들과 연계되어 있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옥구의 후지 농장(不二農場)이었다. 『군산개항사』는 1899년 군산의 개항 이후부터 개항 25주년이 되는 1920년대 중반까지의 군산의 역사와 현황을 기록해 놓은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개항 이후 일본인의 증가와 그들에 의한 도시의 형성 발전 및 제반 시설 등의 연혁이 함께 나와 있어 지방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이다. 다만 일본인의 시각으로 군산이 근대적인 항구 도시로 발전하는 과정을 일본인 조직이나 일제에 의한 철도, 항만 등의 근대 인프라 설치 등을 중심으로 하여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재조일본인들의 지방사 편찬은 식민통치에 필요한 자료 조사의 결과물이며 나아가 식민통치의 결과로 지역사회가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의도에서 편찬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눈으로 본 한국의 근대(개항기~식민지기)와 ‘식민사학’(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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