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정십오년사(朝鮮始政拾五年史, 이하에서는 『시정15년사』로 서술함)』는 병합 15주년을 기념하여 1925년 인천의 일본어 신문사인 조선매일신문사(朝鮮每日新聞社)와 조선시정기념간행회(朝鮮施政紀念刊行會)가 준비하여 출판한 역사서이다. 저작자는 조선매일신문사의 이사(理事)인 다우치 다케시(田內武, 필명 竹葉)이다. 저자인 다우치의 이름은 1917년 조선연구회에서 간행한 『신조선성업명감(新朝鮮成業名鑑)』(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고문헌자료실 소장)과 1937년 조선연구회 본부에서 편찬한 『근대조선이면사(近代朝鮮裏面史)』의 공저자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조선연구회의 이사 또는 주간을 역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시정15년사』에서도 다우치의 조선연구회 이력이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연구회에서는 일찍부터 식민지 조선 경영에 필요한 자료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으며,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다우치가 『시정15년사』 를 저술하는 과정에 반영되었을 것이다. 책의 서문을 통해 『시정15년사』의 간략한 간행 경위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원래 조선매일신문사의 기념 역사서로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조선시정기념간행회에서 『조선통치와 공로자(朝鮮統治と功勞者)』라는 제목의 책자를 편찬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정기념간행회의 사정으로 인해 관련 업무가 조선매일신문사로 넘어오게 되면서, 인물 표창보다는 병합 전후의 조선을 비교하는 형태의 기념 역사서로 주된 내용이 변경되었다. 당초에 기획했던 ‘조선통치와 공로자’는 책의 부편(附編)으로 편집함으로써 ‘진지한 일한(日韓)의 병합 기념 역사’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1910년 일본이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이후, 일본 정부는 ‘한국’(대한제국의 약칭)을 ‘조선’으로 바꾸어 부르고, 식민지 조선을 ‘내지(內地: 일본제국 본토)’에 대비되는 ‘외지(外地)’로 불렀다. 명목상으로는 ‘외지’에도 일본 ‘내지’의 법률과 제도를 점차 시행하겠다는 이른바 ‘내지연장주의’를 표방하였지만, 이는 구호에 그쳤으며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당시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는 식민지 통치를 위해 총독부가 들어섰으며, 조선총독부는 1910년 이래 1945년 해방 때까지 본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조선을 통치했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한 이들은 제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부터 제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제3·5대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제4대 야마나시 한조(山梨半造), 제6대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제7대 미나미 지로(南次郎), 제8대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제9대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 등 총 8명이다. 『조선시정15년사』가 출판된 1925년은 제3대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의 재임 기간에 해당한다. 책의 첫머리는 출간 당시 조선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의 제자(題字)와 함께 총독의 기념사인 「시정 15년을 맞이하다(施政十五年を迎ふ)」 를 싣고 있다. 이 글에서 사이토는 병합 15주년을 경축하며 “병합은 동양의 평화를 영원히 유지하고 제국의 안전을 장래에 보장함과 함께, 항상 화란(禍亂)에 고통받던 반도의 민중을 화평한 시대로 이끌고 행복을 증진케 하기 위해 이루어진 대업”이라고 평가하였다. 원래 일본(내지)와 조선은 지역적으로도 인접해 있고 이해관계가 같을 뿐 아니라 풍속도 비슷하여 서로 일체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추세이나, 세계의 진운(進運)에 따라 발달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밖으로는 강한 이웃의 압박을 받고 안으로는 함부로 정쟁(政爭)을 일삼아 마침내 극도의 피폐 곤비함에 빠졌기에, 자연스럽게 오늘날 일본은 앞서고 조선은 뒤쳐지는 차이를 낳게 되었다고 하면서, 전형적인 정체성론, 당파성론의 조선 인식을 보여준다. 조선에서 오랜 세월 지속된 악정을 제거하고 반도에 완전한 문명적 정치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병합은 다만 피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 총독부 시정 이전의 상태를 회고하면, 매번 동양 화란(禍亂)의 연원지였던 역조(歷朝)의 비정(秕政)은 극에 달하였다. 이 때문에 달리 견줄 바 없이 희소한 반도의 천혜지복(天惠地福)도 이롭게 이용할 수 없고 산하 초목은 생기를 잃었으며 산업이 극히 위미하고 황폐해지고 민중은 이로 인하여 도탄의 참혹한 고통에 빠지기를 거듭하니 … (중략) … 그런데 일한병합 후 이래 세월이 흐른 것이 그야말로 15년, 아직 시작하는 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신정(新政)의 기초는 점차 더욱 공고해지고 제반 시설 경영이 더욱 진보하여 산업 발달, 교육 보급 및 경비 위생기관의 충실, 교통 운수의 발전, 제도 문물의 개선 등 서적(庶績)을 점차 거두고 산천 초목 또한 모습이 바뀌어 면목을 일신하였으며 오랜 세월의 주구로 곤비했던 민중도 모두 덕화(德化)와 화평의 경사를 입으니 그 부력을 증진하여 동인(同仁: 일시동인)의 혜택이 장차 전토를 넉넉하게 적시려 한다. 이는 대개 우리 관헌의 시설이 적절함을 거둠에 따른 것이며 동시에 또 한편으로 조선에 있는 선각 유지들의 국민적 활동에 수반된 것이 아니었다면 어찌 오늘날의 조선을 바랄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 위정 관헌과 서로 호응하여 각종 사업에 독특한 수완을 발휘하고 있는 인사들은 실로 우리 새 조선 건설자이며 또 공로자이므로 우리는 충분한 경의와 감사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서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시정15년사』는 민중을 도탄에 빠뜨렸던 조선 역조의 비정에 비해, 총독부 설치 후의 시정이 얼마나 많은 ‘발전’을 보여왔는지를 과시하는데 가장 큰 주안점을 두고 있었다. 아울러 병합을 위해 노력한 ‘공로자’들의 역할을 기념하기 위해 부록으로 ‘조선통치와 공로자’ 명단을 실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정〇〇년사』의 이름을 붙인 기념 역사서는 시정15년사』 외에도 두 종류가 더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1935년 우가키 총독 시기에 『시정25년사(施政二十五年史)』를, 1940년 미나미 총독 시기에 『시정30년사(施政三十年史)』를 출판한 것이 그것이다. 25년사와 30년사 역시 병합 이후 조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며 식민 통치의 업적을 정리하고 대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시정15년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후 조선총독부가 주관하여 편찬한 『시정25년사』 및 『시정30년사』와 민간에서 주도한 『시정15년사』는 서술 체계가 다르다. 『시정25년사』와 『시정30년사』는 시간순서에 따라 제1대 총독부터 각 총독의 재임 기간으로 나누어 서술하는 반면, 『시정15년사』는 ‘병합 전후’의 조선을 비교하는데 서술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우리 조선 통치의 도정(道程)」에서는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 이래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 일본이 조선을 병합하기까지 겪었던 여러 과정과, 조선총독부 설치 및 1910년대의 정책에 대해 간략히 개괄하였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변화된 시정방침에 대해 제2장 「관제개혁과 새 방침」에서 설명하였다. 제3장과 제4장은 조선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설명하고 있다. 제3장에서는 조선(한반도)의 지세, 연혁, 면적 및 호구, 기후, 산맥과 하천, 지질 등 식민지 조선의 자연환경과 역사에 대해, 제4장 「민족과 풍습」에서는 풍속 습관 등 조선 민족의 문화적 특징에 대해 설명하였다. 제5장부터는 분야를 나누어, 부문별로 병합 전후의 변화상을 서술하였다. 제5장은 정치, 제6장 산업, 제7장 재정, 제8장 경제, 제9장 무역, 제10장 교통운수, 제11장 토목 및 건축, 제12장 통신기관, 제13장 교육, 제14장 사회사업 등의 내용으로 이어진다. 특징적인 것은 대개 ‘병합 전후의 〇〇’이라는 제목을 붙임으로써 일본의 한국병합과 조선총독부의 시정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을 얼마나 ‘발전’되었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이다. 제19장부터는 역시 ‘병합 전후’를 비교하는 작업을 보다 세분화하여 각 지역별 현황에 대해 서술하였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황해도, 강원도, 함경남북도, 평안남북도의 순으로 서술되어 있다. 도별 서술의 체제는 앞의 제3장에서 제18장까지 이어지는 조선 전체에 해당하는 내용을 비슷하게 따르고 있는데, 대개 위치와 면적, 지세와 연혁 등에서 시작하여 주요 산업 현황, 상업과 금융, 교육, 교통기관, 문화시설 등에 대해 병합 전후의 변화를 비교하였다. 마지막으로 부편(附編)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병합 및 조선 통치와 관계된 ‘공로자’들을 열거하고 ‘공로’의 내용을 소개하였다. 먼저 관계(官界) 중요 인물편으로 역대의 통감, 총독, 정무총감 및 조선군사령관을 시작으로 병합과 식민지배에 협력했던 조선인들로 일제에게서 작위를 받은 박영효, 송병준, 민영기, 윤덕영, 이항구 등과 조선총독부 역대 각 부/국의 장관 및 현 총독부 각 국장 등 총독부 관계자들을 열거하였다. 두번째로는 산업공로자로, 산업계에 공이 있어 포장(褒章)을 받은 자를 중심으로 열거되어 있고, 이어서 교육공로자, 부업(副業)공로자, 사회사업공로자 등과 감수장(紺綬章) 수여자 등이 열거되어 있으며, 개인뿐만 아니라 각 군의 산업조합이나 조선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법인 및 단체, 상점과 기업 등도 공로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의 눈으로 본 한국의 근대(개항기~식민지기)와 ‘식민사학’(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