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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代日鮮關係の硏究 / 田保橋潔 著 ; 朝鮮總督府中樞院 編.

Tabohashi, Kiyoshi, 1897-1945.

서지정보

서명 近代日鮮關係の硏究 / 田保橋潔 著 ; 朝鮮總督府中樞院 編.
편저자 Tabohashi, Kiyoshi, 1897-1945.
Chōsen sōtokufu. chusuin.
판사항 -
발행사항 京城[서울] : 朝鮮總督府中樞院, 昭和15[1940].
형태사항 2 v. : plates, ports ; 22 cm.
언어 일본어 (jpn)
설명주기
『근대 일선관계의 연구(近代日鮮關係の硏究)』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이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의 편찬주임을 역임했던 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의 저작으로, 1880년대부터 청일전쟁 개전에 이르는 한·중·일 외교관계 등 동아시아 국제정치사를 다룬 책이다. 194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간행되었다. 다보하시 기요시는 흔히 한국근대사 연구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일본 근대외교사 연구자였다. 그는 1880년대부터 청일전쟁까지의 한·중·일 외교관계를 다룬 『근대 일지선관계의 연구(近代日支鮮關係の硏究)』(1930), 메이지시대 일본과 러시아, 미국 간의 외교관계를 다룬 『근대일본외교관계사(近代日本外交關係史』(1930), 메이지시대 외교사를 전반적으로 다룬 『메이지 외교사(明治外交史)』(1934) 등을 냈다. 또한 그가 가장 중점을 두고 연구한 부분은 청일전쟁의 개전 외교였다. 저자인 다보하시 기요시는 홋카이도(北海道) 출신으로, 1919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국사학과에 입학하여 1921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도쿄제대 사료편찬소에서 일하다가 1924년 9월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개교하자 강사 촉탁으로 발령을 받았다. 1924년 10월 구미유학의 명을 받고 유럽을 둘러본 뒤 1927년 귀국하여, 그해 3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조교수가 되었다. 1년 뒤인 1928년 4월에는 교수로 임명되어 국사학(일본사학) 제1강좌 담임을 명령받았고, 주로 한·중·일 간의 근대 외교사(국제관계사)를 주로 연구하고 가르쳤다. 1933년 3월 그는 경성제대 교수를 하면서 동시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편찬 주임에 촉탁되었다. 1940년에 『근대 일선관계의 연구』를 도쿄제대 박사학위논문으로 제출했으나, 당시 심사위원을 맡은 교수가 거부하여 통과되지 않았다. 다보하시의 책 중 청일전쟁을 일본 해군이 먼저 도발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 책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 통치에 유익하다고 판단해서 인쇄비를 지급했으나, 당시에는 오직 집무에만 참고할 뿐 일반에게 비공개하는 것을 전제로 출간되었다. 그것은 다보하시가 엄밀한 실증주의에 입각해서 역사가의 가치 판단을 최소화한 채 오로지 조선·일본·청의 문서기록에만 의거하여 조선을 중심으로 한 근대 동아시아 외교사를 서술했기 때문이다. 1940년 당시 극도로 우경화한 일본제국주의하에서는 이 정도도 불온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다보하시는 서언(緖言)을 통해 『근대 일선관계의 연구』의 집필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밝혔다. 하나는 조선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사를 한국·청·일본 세 나라의 정부 기록에 근거해서 논술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세 나라의 정부기록문서를 교정, 편찬해서 인쇄하는 것이다. 다보하시는 이 책을 연구서이면서 동시에 사료로서의 용도, 즉 자료집으로서의 용도를 겸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이 책은 한국·중국· 일본의 외교문서는 물론, 영국·러시아·미국 등의 외교문서 등 방대한 사료를 기초로 하여 쓰인 데다, 원자료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 많다. 이 책에 인용된 일본, 조선의 문서 중 태반은 미공개 상태이기 때문에 일반 학도들은 접근하기 어렵고, 구한국의 정부 기록 중 일기(日記)나 등록(謄錄) 들은 이문(吏文)으로 쓰여있어 읽기가 어렵기 때문에 사료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다수의 사료를 인용했다고 설명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상권 제1편은 총설로서 “근대 조선의 정세를 논하고 조선 특유의 세도정치의 기원과 외국 관계의 대요를 설명”하기 위한 편이었다. 주로 대원군 시대를 다루었다. 제2편은 ‘일·한 신관계의 성립’이라는 제목으로, 메이지유신 후 일본이 조선과 새로운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교섭한 과정과 운요호 사건, 병자수호조규(강화도조약) 등을 다루었다. 제3편은 ‘일·한 국교의 갱신과 그 반동’이라고 되어있는데, 개국에 수반된 반동 즉 조선 내의 위정척사론와 개화론의 마찰이 임오군란·갑신정변으로 이어진 내용을 다루었다. 제1~3편이 상권이고 하권은 제4편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제4편은 ‘조선에서의 일·청의 항쟁’으로, 갑신정변 후의 정세와 방곡령 배상 사건, 김옥균 암살, 동학의 변란, 일청 양국의 출병, 조선국 내정개혁 문제, 갑오 정변, 일청의 전쟁 위기, 일청 개전 등 갑신정변 후부터 청일전쟁에 이르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4편 뒤에는 별편(別篇)으로, 쓰시마번(對州藩)을 중심으로 한 조·일관계를 다루었다. 다보하시는 엄격한 실증주의를 표방하여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이어서, 그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지적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73년 나이 어린 국왕을 대신하여 집정(執政)의 자리에 올라 10여 년간 완고한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을 하야시킨 고종과 여흥 민씨 척족 세력은 친정(親政)과 동시에 개국(開國)으로 정책을 선회하였다. 그러나 이른바 자강(自强)을 달성하고자 했던 고종의 개국 정책은 극도로 누적된 조선 후기의 국가적·사회적 취약성과 결부되어 조선의 대외의존성을 증가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약(自弱)’이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즉 개국의 필연성은 일찍부터 인식했지만, 그것에 반대하는 여론을 무마하고 부국강병을 달성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을 국내에서 확보하기 어려웠던 고종의 개국 정책은 불가피하게 외국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던 청과 일본의 조선 정책 내지 동아시아 외교정책은 조선 내부의 정치적 동향에 큰 영향을 받았고, 조선의 국내 정치 또한 외부의 환경 변화의 추이에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이는 청과 일본의 관계가 조선을 매개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였다. 고종의 개국 정책에 대한 반동으로 격발한 1882년의 임오군란이 조선 내의 정치적 격변을 계기로 청과 일본의 대결 구도가 표면화된 사건이었다면, 1884년 갑신정변으로 정점에 달한 이른바 사대당(事大黨)과 개화당(開化黨)의 분열은 조선을 사이에 둔 청과 일본의 경쟁이 조선 정계 내부에 반영된 현상이었다. 조선을 사이에 둔 청과 일본의 점증하는 긴장이 조선 국내 정치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조선 정계의 분열상이 다시 청·일 관계를 자극하는 이러한 상승효과는 결국 양국의 전면적인 무력충돌, 즉 청일전쟁이라는 파국을 통해서만 해소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검토해 보면,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인 언사를 드러내면서 서술하지는 않았다. 그는 1894년 일본의 조선 파병을 둘러싸고 일본 외무성의 현실적인 소극론과 군부의 무리한 강경론이 갈등을 빚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었으며, 일본 해군과 육군이 선전포고도 없는 상황에서 청국의 해군과 육군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다보하시 스스로 지적했듯이 제2편 ‘일한 신관계의 성립’ 부분에서는 일본측의 기록을 주요 사료로 인용하면서 조선 정부 기록은 부수적으로 참조하는 사료의 편향성을 보였다. 이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발생한 대립 사건을 일본 측의 사료에 기초해서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조선의 개국과정에서 자행된 일본의 횡포와 강압, 불법을 은폐하고, 모든 책임을 조선 측에 전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다보하시는 고종시대 조선의 정치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당파 간의 당쟁을 크게 부각시키고, 대원군의 개혁이나 개화파의 개혁의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서술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 사용했던 ‘개화’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각은 일본의 한국 병합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보하시는 1944년 『조선통치사 논고(朝鮮統治史論稿)』에서, 조선총톡부의 조선통치는 치안유지, 산업개발, 생활안정 등에서 현저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주장하고, 조선인들도 천황의 황은에 감사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였다. 결국 실증사학자로서 사실을 사실대로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하였으나, 식민지 조선에 대한 현실인식에서는 일본 제국주의 통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눈으로 본 한국의 근대(개항기~식민지기)와 ‘식민사학’(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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