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은 1945년 8월 16일 설립된 조선학술원이 1946년에 서울신문사에서 발행한 기관지 성격의 학술지이다. 해방 후의 첫 학술단체인 조선학술원은 이병도(李丙燾), 백남운(白南雲), 홍명희 등이 1945년 해방 당일부터 연락을 취해, 8월 16일 서울 YMCA 회관에서 첫 모임을 열어 17명을 설립준비위원으로 선정하고 그날 저녁 경성공업고등학교에서 설립 총회를 개최하여 설립하였다고 한다.『학술』은 ‘해방기념논문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1946년 8월 25일에 간행되었다. 출판사항에 따르면 저작인(著作人)은 도상록(都相綠), 발행인은 하경덕(河敬德), 인쇄인은 김원식(金元植)이며, ‘서울신문사 출판국 간행’으로 되어 있으며 251면으로 출판되었다. 『학술』에는 전반부에 학술원 회원 10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뒤에 <학술원휘보>가 첨부되어 있다. 논문의 목차를 보이면 다음과 같다. 白南雲, 「科學의 使命」 -- 金漢周, 「朝鮮 地稅令 硏究」 -- 金宅源, 「朝鮮 敎育史 硏究」 -- 申南徹, 「歷史의 發展과 個人의 實踐」 -- 尹行重, 「偶然性과 必然性」 -- 金鳳集, 「科學技術 計畫論」 -- 金東一, 「朝鮮의 纖維工業」朴致祐, 「民主主義의 哲學的 解明」 -- 孫明鉉,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의 歸納法의 問題」 -- 尹萬重, 「蘇聯科學의 名節」-- 學術院彙報 1. 學術院規章, 2. 學術院趣旨書, 3. 學術院委員錄, 4. 學校敎育臨時措置要綱案, 5. 貨幣-金融及物質에 關한 緊急對策委員會의 報告, 6. 生活必需品確保에 關한 緊急對策委員會의 報告, 7. 學術院日誌, 8. 編輯後記. 조선학술원의 ‘학술원규장 제3장’에서는 사업목적을 “본원은 과학의 제부문에 걸쳐서 진리를 탐구하며 기술을 연마하여, 자유조선의 신문화건설을 위한 연총(淵叢)이 되며 나아가서 국가의 요청에 대한 학술동원의 중축이 되기를 목적으로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조선학술원 취지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정치의 자유가 없는 데는 학술의 발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 조선에서는 학술이 위축 또는 왜곡되어 그 임무는 대체로 노예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학술의 저류는 진정한 궤도를 찾으려고 쉴 새 없이 흘렀던 것이다. 이제 조선민족은 일본제국주의 기반(羈絆)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3천만 민족은 바야흐로 환희와 감격의 바다를 이루었고 산하(山河)도 또한 기쁨을 띄고 있다!! 그러나 민족적 독립 해방으로부터 인민 본위의 사회 해방으로 전진하는 건설 과정에는 더욱이 과학과 기술의 동원체제로서 학과 술의 내면적 조직과 유기적 구성이 절대로 요청되는 것이다. 자(玆)에 약간의 유지학도(有志學徒)와 기술자들은 미력이나마 신국가 건설기를 임하여 각계 전문학도와 지도적 기술자들을 대동 집결하여 조선학술원을 창설하고 첫째로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조선경제체제 재건과 계획에 관한 근본적 검토를 가하고 둘째로 정치경제와 사회문화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는 핵심문제에 대한 과학적 토론을 거듭함으로써 신정부의 요청에 대한 국책적 건설안을 준비하며 셋째로 장래의 학술체제와 고차적인 사회연구 태세를 확립하고자 별지(別紙) 규약을 제정하고 다시 그에 준거한 과학 각부와 기술 본부와 경제기업본부와의 유기적 조직체로서 위선(爲先) 당면한 임무를 수행하고자 각계의 전문학도와 지도적 기술자 제위(諸位)의 적극적 노력을 요청하는 바이다. 조선학술원은 설립 후 1여 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1946년 8월 해방 1주년을 기념하여 학술지 『학술』을 간행하였다. 활동한 회원으로 도봉섭(都逢涉), 안동혁(安東赫), 김양하(金良瑕), 이균(李鈞), 허달(許達), 홍명희, 이원철(李源喆), 김봉집, 최윤식(崔允植), 백남운, 윤행중, 신남철, 조백현(趙伯顯), 윤일선(尹日善), 김성진(金晟鎭), 최용달(崔容達), 김계숙(金桂淑), 윤일중(尹日重) 등이 있다. 그러나 정세에 따른 몇몇 학자의 월북 등으로 인해 와해되었다. 조선학술원은 일제 강점기인 1936년부터 백낙준(白樂濬)과 백남운을 중심으로 ‘중앙아카데미’를 발족하려는 움직임이 지속돼 왔기 때문에 해방직후 곧바로 설립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학술원의 해체 이후 전쟁과 분단 속에서 남북은 각각 ‘학술원’과 ‘과학원’을 설립하게 되는 바 그 과정에서 조선학술원 회원들이 해당 단체의 중요한 설립 주체들로 활동했다고 한다. ‘백사문고’에는 『학술』 초판본이 1권 소장되어 있다. 전광용과 백사문고(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