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비평사에서 18세기는 무엇보다 위대한 본문비평의 시기로 기록된다. 그것은 직전 시기와 비교하면 완벽한 반전이었다. 직전의 왕정복고기(Restoration period, 1660-1688) 동안 셰익스피어는 대개는 번안되어 공연되었다. 왕과 함께 귀환한 귀족들이 망명생활 중에 학습한 대륙의 신고전주의적 문학관이 확산되었고, 셰익스피어는 이런 강력한 문화적 규범에 의거하는 과격한 개작을 거치고서야 공연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예 연극이 금지되었던 그 이전의 내전기와 공화정 시기까지 포함하여 셰익스피어의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기간은 곧 종식되고 셰익스피어에 대한 평가는 반등하여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그럴수록 신뢰할 수 있는 본문을 갖춘 셰익스피어 작품집에 대한 요구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18세기 내내 당대의 내노라하는 저명한 작가와 문필가, 그리고 학자들이 셰익스피어 본문을 확정짓기 위해서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리하여 저마다 탁월한 본문비평의 성과임을 자부하는 셰익스피어 전집이 다수 발간되었다. 18세기의 셰익스피어 전집 편집자로는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이었던 시인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와 비평가 새뮤얼 존슨이 가장 유명하지만, 셰익스피어 본문의 개선 측면에서 시오볼드(Lewis Theobald, 1688-1744)나 워버튼(William Warburton, 1698-1779) 그리고 말론(Edmond Malone, 1741-1812)처럼 평생에 걸쳐 셰익스피어와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학과 문헌을 연구한 이들의 기여가 훨씬 더 컸다. 후대에 와서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학자 부류의 편집자들이 이 일생일대의 과업에 들인 공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예컨대, 시오볼드 같은 이는 F1 판본을 저본으로 삼되 대개는 그 이전에 출간된 40여개의 Q 판본을 일일이 대교(對校)하는 것을 본문편집 작업의 근간으로 삼았고, 추측에 의한 정정은 최대한 자제했다. 더 나아가 그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출전으로 추정되는 모든 자료를 검토하는 것은 물론 셰익스피어가 구사했던 표현과 단어의 정확한 뜻을 추정하기 위해서 800여 편의 과거 극작품을 연구하여 영어의 변천과정을 추적했다. 이런 노력 끝에 그는 300개 이상의 정정을 도입했는데, 그 세밀한 근거를 주에 표기했다. 현재에도 학술적인 성격의 셰익스피어 판본은 작품해석에 관련된 것보다 본문편집의 근거를 밝히는 주가 위주인 것은 바로 이런 학자-편집자들이 확립한 전통이다. 일군의 탁월한 셰익스피어 편집자들은 대개 셰익스피어 전집 출간에 착수하기 전에 이미 오랜 기간 엘리자베스 시대의 문학작품과 문헌을 연구해왔고, 저명한 문인-편집자와 구분되는 이런 일종의 사전작업이 셰익스피어의 본문 개선이라는 성과를 낳는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셰익스피어의 편집자들은 최종적인 판본을 내놓겠다는 포부를 품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꿈이었다. Q 판본들은 불법적인 경로로 출간·유통된 경우가 적지 않았고, 합법적인 F 판본들의 본문 또한 편집자였던 셰익스피어 동료들의 기억에 의존한 대목이 적지 않았으며, 현대 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출판의 여러 단계에서도 왜곡이 발생했기에 셰익스피어의 본문은 애초에 완벽한 복원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본문편집은 어느 정도는 셰익스피어의 의도를 최대한 근사치로 추정하는 성격을 띠었고, 따라서 영원히 논쟁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8세기 내내 셰익스피어의 전집 출간과 관련해서 논쟁이 계속되었는데, 편집자들끼리 자주 협력관계를 맺기도 했던 터라 그 과정에서 복잡하게 얽힌 은원(恩怨)관계가 개입되면 논쟁은 과열되어 인신공격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런 사례로는 포프와 시오볼드의 경우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1726년 시오볼드는 직전 해에 출간된 포프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비판하는, 셰익스피어 비평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복구된 셰익스피어, 혹은 포프 씨의 최근 셰익스피어 판본에서 정정되지 않거나 자행된 다수의 오류에 대한 사례들』(Shakespeare Restored, or a Specimen of the Many Errors as Well Committed as Unamended by Mr Pope in His Late Edition of This Poet)을 출간했다. 1728년 포프는 그에 대한 ‘답례’로 그 유명한 풍자시 『던시어드』(Dunciad, ‘바보 열전’ 정도의 의미)를 썼는데, 그 작품에서 한껏 조롱되는 바보들의 왕은 대번 시오볼드의 이름이 연상되는 티발드(Tibbald)였다. 그레이(1688-1766)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비평적, 역사적, 해설적 주 - 본문과 운율의 정정 포함』 또한 비슷한 출판 배경이 있는데, 그레이의 적수는 18세기에 다섯 번째로 나온 셰익스피어 전집의 편집자였던 워버튼이었고 여러 차례 오갔던 둘의 논쟁에는 이전에 전집을 펴낸 포프와 핸머(Thomas Hanmer, 1677-1746)가 관련되어 있었다. 국교회 목사였던 그레이는 내전기의 출간물을 비롯하여 과거의 문헌을 광범위하게 수집했고, 그 과정에서 서지학자로서의 수련을 거쳤던 것으로 보인다. 저술활동 초기에 그는 영국국교회와 왕정을 옹호하는 팸플릿의 저자로 명성을 얻었는데, 그의 글은 내전기 동안 공화정을 옹호했던 저자들에 대한 상세한 분석에 특장이 있었다. 그의 문학관련 저술에서도 유사한 정치적 동기가 반영되었다. 1744년 그는 내전기에 발간된 버틀러(Samuel Butler, 1613-1680)의 『후디브라스』(Hudibras)의 주석판을 재출간했는데, 상세한 주를 통해서 이 작품의 풍자가 구체적으로 개신교 교파의 누구를 겨냥했는지를 밝혔다. 바로 이 책의 출간으로 워버튼과의 악연이 시작되었다. 워버튼은 자신의 지인에게 제공한, 버틀러 작품에 대한 주를 그레이가 허락도 없이 사용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 판본에 대한 둘의 논쟁이 촉발되었고, 곧 논쟁의 대상은 1747년에 출간한 워버튼의 셰익스피어 전집으로 옮겨갔다. 그는 워버튼의 전집을 공격하는 팸플릿을 두 차례나 출판했다. 두 팸플릿은 각각 1747년과 1750년에 나온 『최근의 한 셰익스피어 판본에 대한 논평』(Remarks Upon a Late Edition of Shakespeare)과 『셰익스피어와 포프를 크게 개선한 이에게 보내는 친밀하고도 자유로운 편지』(A Free and Familiar Letter to That Great Refiner of Pope and Shakespeare)였다. 워버튼을 신랄하게 비꼬는 두 번째 팸플릿의 제목은 시간이 꽤 흐른 후에도 그에 대한 그레이의 악감정이 여전했음을 보여준다. 비판의 핵심적인 논지는 워버튼이 셰익스피어의 여러 판본 중에서 본인이 높이 평가했던 핸머, 그리고 포프의 판본을 훼손했던 것으로 모아진다. 요컨대, 워버튼은 전집의 판매고를 늘리기 위해서 공동편집자로 포프의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실제로는 포프의 전집을 저본으로 삼지 않았고, 한편 그토록 비난했던 핸머 그리고 시오볼드의 전집에서 많은 점을 차용했다는 것이었다. 시오볼드가 포프를 비판한 후 자신도 셰익스피어 전집을 펴냈듯이 선배 셰익스피어 편집자에 대한 비판은 최종적으로는 직접 개선된 판본을 내놓는 것으로 완수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레이 또한 이 해제 대상 서적을 출간하게 되었지만, 아마도 전집 출간에 필요한 막대한 자원을 끌어올 만큼의 명망가는 아니었기에 책의 형태는 2권 분량의 정정사항을 모아놓는 것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본문비평가로서 자부심은 상당했고, 여타 선배 편집자와 구분되는 자신만의 강점으로 인해 셰익스피어의 본문비평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믿었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모든 셰익스피어 전집에 공히 나타나는 결점으로 “작품에서 언급되는, 셰익스피어 생애 중에 발생한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 그리고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에는 대부분 폐기된 상당수 법률”들이 아예 간과된 점을 꼽으며, 자신이 그 공백을 메움으로써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해에 크게 기여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고, 그리하여 시오볼드의 경우처럼 셰익스피어 전집의 출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셰익스피어 비평사에서 그레이의 이름은 18세기 초에 활동한 군소 비평가 중의 한 명으로 언급되는 정도이다. 이런 사정은 무엇보다 잘못된 저본의 선택 탓으로 보인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의 본문을 F1 판본과 더불어 시오볼드·핸머·워버튼의 전집에서 인용하고 병기·대조하는 식의 지면 구성을 취했다. 그레이가 높이 평가하는 앞의 두 본문비평가는 모두 포프의 전집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후대 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포프의 전집은 운율을 개선한 공로를 제외하면 대교정정을 거의 하지 않은 매우 불성실한 판본이었다. 그리고 그레이의 전반적인 셰익스피어 작품평 또한 오랜 기간 셰익스피어 비평의 주류였던 낭만주의적 시각에서 보자면 매우 고루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오랜 기간 역사를 깊이 연구한 사람답게 셰익스피어의 시대착오(anachronism)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성적인 표현이나 말장난”(jingles, puns and quibbs)이 두드러지는 셰익스피어의 언어습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 책은 다채로운 시각에서 왕성하게 이루어졌던 18세기의 셰익스피어 연구의 정황을 증언하는 흥미로운 사례로, 오늘날과는 사뭇 다른 당시의 출판 관행과 책의 형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역사적 접근이 대세인 이즈음의 셰익스피어 연구경향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 책은 시대를 앞서간 저술로 새로이 주목받게 될 수도 있다고 예측해본다. 셰익스피어를 향한 열정(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