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서적은 1929년 상하이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주즈첸(朱子辰) 편찬, 왕운우(王雲五) 및 주징농(朱經農) 교정으로 발간된 『신시대 삼민주의 교과서: 소학교 초급용(新時代三民主義敎科書: 小學校初級用)』의 제8책이다. 표지에는 독서 중인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린 삽화와 제목 그리고 “대학원심정(大學院審定)”이라는 검정 인증이 표기되어 있다. 여기에서 대학원은 1927년 10월 국민당(國民黨) 정부가 기존의 교육부 및 교육행정위원회(敎育行政委員會)를 대체하여 만든 최고 교육행정 기관을 가리킨다. 저명한 교육자이자 국민당 지도자였던 차이위안페이(蔡元培)가 원장을 맡아 교육개혁을 추진하였으나, 비용 문제와 각계의 반발로 인하여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고, 결국 1928년 10월 대학원 자체가 폐지되기에 이른다. 다만 본서의 출판연도인 1929년은 이미 대학원이 해체된 이후이므로, 아마 집필 과정에서 심정을 받았거나 초판이 대학원의 심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래 소학교 초급용 삼민주의 교과서는 전체 8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현재 마지막 권인 제8책만이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8책은 중국국민당의 정강(政綱)을 중심으로 하여 총 20과로 이루어졌으니, 이하 목차와 함께 각 과의 핵심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고자 한다(원문 그대로가 아닌 요약). 1. 삼민주의의 발명자1(三民主義的發明者一) 2. 삼민주의의 발명자2 (三民主義的發明者二) 3. 중국국민당의 역사1(中國國民黨的歷史一) 4. 중국국민당의 역사2(中國國民黨的歷史二) 5. 중국국민당의 역사3(中國國民黨的歷史三) 6. 중국국민당의 정강(中國國民黨的政綱) 7. 불평등 조약 폐기(取消不平等條約) 8. 자치단위 확립(確立自治單位) 9. 보통선거 실행(實行普通選擧) 10. 고시제도 개정(釐定考試制度) 11. 인민의 자유권 확정(確定人民的自由權) 12. 군제개혁(改革軍制) 13. 세액 엄정화(嚴定稅額) 14. 농촌조직 개량(改良農村組織) 15. 노동자 지원(扶助勞工) 16. 남녀평등(男女平等) 17. 교육보급(普及敎育) 18. 토지문제 해결(解決土地問題) 19. 국유실업 부흥(興辦國有實業) 20. 건국의 세 시기(建國的三個時期) / 제1과. 삼민주의의 발명자1 (三民主義的發明者一) 삼민주의의 발명자는 쑨중산(孫中山) 선생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혁명사상을 지녔으며, 20세 만청(滿淸) 정부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을 보고 본격적인 혁명을 계획하게 되었다. 쑨중산은 개인이나 소수 집단이 혁명을 성공시킬 수 없음을 알았기에 전체 인민이 참여하는 혁명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혁명에서 다수의 인민을 지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혁명 이론인 삼민주의를 만들어냈다. / 2. 삼민주의의 발명자2 (三民主義的發明者二) 쑨중산 선생은 삼민주의의 선전과 실천에 평생을 바쳤고, 그의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였다. 아울러 생전 한 사람이 열 사람에게, 열 사람이 다시 백 사람에게 전파하면, 장차 전 국민이 모두 삼민주의를 따르게 되리라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진정한 삼민주의의 실행을 위해 신해혁명을 일으켰으며 이후에도 혁명을 멈추지 않았으니, 유촉(遺囑)에서도 국민당의 삼민주의 혁명 계승을 당부하였다. / 3. 중국국민당의 역사1(中國國民黨的歷史一) 쑨중산 선생은 혁명의 역량 강화를 위하여 혁명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혁명당을 조직하였으니 중국국민당은 그가 최후로 조직한 혁명당이다. 중국국민당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민국전(民國前) 18년 성립한 흥중회(興中會). 민국전 7년 성립한 동맹회(同盟會). 민국 원년 성립한 국민당(國民黨). 민국 3년 성립한 중화혁명당(中華革命黨). 민국 9년 성립하고 13년 개조한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 4. 중국국민당의 역사2(中國國民黨的歷史二) 청나라 시기에는 탄압이 심하여 공개적인 혁명당 조직이 어려웠고, 이에 흥중회의 이름으로 혁명을 선전하였다. 이후 혁명세력을 규합하여 “驅逐㺚虜, 恢復中華, 建立民國, 平均地權”를 표방한 동맹회를 조직하였으나 여전히 혁명운동은 은밀히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중화민국 건립 이후 일부 인사들이 삼민주의를 망각한 채 동맹회를 국민당으로 개편하며 혁명성을 상실하였고, 이에 쑨중산은 당의 타락에 반발하여 혁명세력을 다시 모아 중화혁명당을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민국 9년 중화혁명당을 중국국민당으로 개명하였으며, 13년에는 당의 조직을 완전히 개조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5. 중국국민당의 역사3(中國國民黨的歷史三) 중국국민당은 개조 이후 당의 이론이 확립되었고 조직 또한 한층 엄밀해졌다. 무엇보다도 제1차 전국대표대회를 거치며 삼민주의 해석을 분명히 하였다. 당의 최고기관인 중앙집행위원회 이하 중앙-지방-기층으로 이어지는 조직을 갖추었으며, 선전 · 조직 · 농민 · 노동자 · 여성 · 군인 · 해외 등을 전담하는 부서도 있다. 아울러 당원은 당의 지위에 복종하면서 혁명공작을 진행해 나가야 한다. 비록 개조 이후 쑨중산 선생이 별세하였지만, 중국국민당은 그의 유지를 지키며 국민혁명을 완성해나가고 있다. / 6. 중국국민당의 정강(中國國民黨的政綱) 중국국민당은 총리 쑨중산 선생이 창조한 삼민주의와 오권헌법의 요체를 정강(政綱)에 담았다. 이는 중국을 구제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비록 실천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서둘러서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정강은 대외정책과 국내정책을 포괄한 총 22조로 이하 주요 내용을 서술하도록 하겠다. / 7. 불평등 조약 폐기(取消不平等條約) 중국이 당면한 가장 위급한 문제는 외국인의 압박이다. 중국의 영토임에도 외국의 조차지가 존재하고(영토 주권), 중국에서 법을 어겼음에도 중국 법률을 무시하며(치외 법권), 중국 해관조차 외국인이 관리하기 때문이다(관세 자주권). 이는 모두 강요된 불평등 조약으로 인한 것이니, 따라서 국민당은 ‘불평등 조약의 폐지’를 정강에 담아 주장하고 있다. / 8. 자치단위 확립(確立自治單位) 삼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지방의 기초 단위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국민당은 현(縣)을 자치단위로 삼고 다음과 같은 업무를 자치의 영역에 배정하였다. 호구 정리, 자치기관 설립, 지가 결정, 도로 수리, 황무지 개간, 학교 설립. / 9. 보통선거 실행(實行普通選擧) 보통선거 실행 또한 국민당 정강 가운데 하나이다. 현행 선거제도는 자산을 기준으로 삼은 나머지 대다수 국민이 선거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제한 선거를 타파하고 보통선거제를 실현해야 한다. / 10. 고시제도 개정(釐定考試制度) 선거는 훌륭한 제도이지만 전문관리 임용과 같은 일부 영역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에 국민당은 고시제도의 개정을 정강에 포함하였다. 현재 관리들은 지식수준이 부족할 뿐 아니라, 정치의 혼란 속에서 부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부패하지 않는 전문가를 선출하는 고시제도가 필요하다. / 11. 인민의 자유권 확정(確定人民的自由權) 중화민국은 명목상 민주공화국(民國)이지만 실제로는 인민에게 자유권이 없는 상태이다. 국민당은 민권(民權)을 중시하기에 인민의 자유권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 거주의 자유, 신앙의 자유 등을 확실히 보호할 것이다. / 12. 군제개혁(改革軍制) 군대가 모병제를 택한 이래로 군인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모여든 이들로 채워졌다.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이 없고, 전쟁에서도 용맹은커녕 오히려 약탈을 자행한다. 따라서 징병제를 통해 국민 전체가 병역의 의무를 지는 한편, 하급 군관과 병사의 여건을 개선할 것이다. 아울러 군대 내의 직업교육을 통해 군인들이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고 자립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 13. 세액 엄정화(嚴定稅額) 현재 부세(賦稅) 제도는 지나치게 난잡하고 폐단도 많다. 특히 지역 간의 차이가 크며 인민의 부담이 심각하다. 이금(釐金, 국내 상품 통행세)이 대표적이다. 국민당은 외적으로 관세 자주권의 회복을 주장하는 동시에, 이금을 폐지하고 세액을 정액화하여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 14. 농촌조직 개량(改良農村組織) 중국은 전체 인구의 8할이 농민인 농업 국가이다. 국민당 역시 당연히 농민 생활 개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농촌조직의 개량을 통한 생활 개선을 정강에 담았으며, 농민 교육, 도로 건설, 생산량 증가, 대중오락의 확대 등도 함께 주장하였다. / 15. 노동자 지원(扶助勞工) 사회는 사람들의 노력(勞力)과 노심(勞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 모두가 중요하고, 국민당은 민중의 이익을 도모하는 당으로 노동자를 존중한다. 실제 당의 정강에서도 노동자 생활의 개선을 명시하였다. 다만 방법 면에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점진적으로 향상해 나가는 개량적 방법을 사용하고자 한다. 아울러 중국인은 조직 훈련의 기회가 적었기에, 노동자 · 농민 · 상인 · 학생 · 병사 등이 각기 단체를 결성하여 스스로 권익을 찾도록 도울 것이다. / 16. 남녀평등(男女平等) 중국은 오랫동안 남존여비 문화가 강했기에 여성이 사회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이는 평등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국민당은 이러한 남존여비 관습의 타파와 평등을 주장한다. 이를테면 여성의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률과 관행은 마땅히 사라질 필요가 있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긍정하며, 불평등한 교육 기회의 문제도 해결할 것이다. / 17. 교육보급(普及敎育) 현재 국민 가운데 글을 아는 사람은 20%도 되지 않는다. 교육이 보급되지 못하여 대다수 인민이 여전히 우매한 상태에 놓인 것이다. 국민당 정강은 교육 보급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무교육을 목표로 하여 교육 예산과 학교의 확대를 우선 실천하고자 한다. / 18. 토지문제 해결(解決土地問題) 최근 중국은 상업의 발달과 함께 빈부격차도 확대되었다. 국민당은 중국이 구미 국가의 전철(빈부격차로 인한 갈등) 밟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정강에서 사유지에 일정한 가격을 매겨 국가가 필요한 만큼 수매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불평등을 막으면서도 지주의 일방적 손해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 19. 국유실업 부흥(興辦國有實業) 산업의 영역에는 사기업이 감당하기 어렵거나, 독단해서는 안 되는 분야가 존재한다. 전자의 예로는 당장 수익성은 떨어지나 무역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외항업(外航業)이 있고, 후자로는 다수 국민의 교통과 직결된 철도가 대표적이다. 이에 국민당은 정강에 국유실업(國有實業)의 발전을 넣었다. / 20. 건국의 세 시기(建國的三個時期)
쑨중산 선생은 혁명에서 건설까지 신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1) 일체의 제도를 군정이 직접 통제하는 군정시기(軍政時期). 2) 정부가 인민의 자치를 지원하며 민권 운용 능력을 훈련 시키는 훈정시기(訓政時期). 3) 헌법을 제정하고 오권(五權) 정부를 수립하여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헌정시기(憲政時期). 훈정시기에서는 먼저 각지 주민들이 지방정부를 선거로 구성하고, 국민대회(國民大會)를 통해 헌법을 제정한 다음, 헌정시기에 이르러 전면적인 민선 정부가 국가를 다스린다. / 이 같은 신시대 삼민주의 교과서: 소학교 초급용 제8책은 다음과 같은 서술 및 내용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쑨중산과 중국국민당에 대한 우상화와 정당화가 두드러진다. 해당 교과서에 따르면 쑨중산은 삼민주의를 만들어 혁명의 성공을 위해 평생 분투했던 위대한 인물이고, 그의 사상에 기반한 국민당 정강이야말로 최고의 중국 구제법이며, 그러므로 쑨중산의 유지를 이은 국민당의 통치야말로 중국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반면 삼민주의의 내용 자체가 끊임없이 변화하였다는 사실이나, 신해혁명에서 쑨중산의 역할이 한정적이었다는 점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국민당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완성을 자임하면서도 실제 통치 방식은 일당독재에 가까운 자기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실상 삼민주의라는 과목 자체가 교육에 대한 정치적 통제 및 그로 인한 자유의 억압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구국의 명약으로 포장된 국민당의 각종 정책도 현실적 어려움과 정치적 무능 속에서 유명무실해지거나 악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혁명세력이 쑨중산의 지도 하에 단결하여 투쟁한 것처럼 서술한 교과서의 내용과 달리, 혁명세력 내에는 갈등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고 쑨원의 노선을 비판하거나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표한 이들도 상당하였다. 따라서 교과서에 나타난 국민당의 역사와 혁명의 사적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정치적 승리자가 된 쑨중산 일파의 인식이 반영된 서술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본 교과서는 192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국민당의 정치적 주장과 실천방안의 핵심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여기에서 삼민주의는 근대 중국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기되었던 사상 체계이자 근대국가 건설의 계획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국민당은 이에 기반하여 3단계 건국론에 따라 혁명을 진행 최종적으로 오권헌법을 갖춘 민주공화국을 완성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보다 구체적으로 노동자 지원이나 남녀평등 정강은 오사운동 이후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수용하여 정부 차원의 정책에 반영하려 했던 국민당의 진보적인 일면을 확인시켜 준다. 토지문제 해결과 국유실업 부흥책 역시 근대적 산업화의 지체와 빈부격차 확대라는 이중적 문제에 시달리던 중국의 현실 속에서 양자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사유재산의 전면적인 부정이 아닌 비교적 온건한 개량 노선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지주 · 자본가와 같은 보수세력과 공산당으로 대표되는 급진파 사이에서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당의 다소 불분명한 노선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해당 서적은 국민당의 대응에 앞서 근대 중국의 비참한 현실 자체를 드러내는 자료이니, 불평등 조약을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제국주의의 억압이, 군제개혁론에는 군벌할거와 내전 속에서 농민들이 용병이나 토비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삼민주의 교육을 실시한 국민당은 혁명당이자 집권당이라는 양면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신해혁명과 오사운동의 정신을 계승한 진보적 혁명당의 면모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지도자 우상화와 일당독재를 정당화하는 억압적인 모습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이중성은 단순히 국민당만의 문제가 아닌, 낙후된 사회와 외부의 압박 속에서 근대적 국민국가를 건설해야 했던 중국의 절박함과 관계된 문제였다. 일례로 3단계 건국론의 경우 전국을 통제할 행정조직이 완비되지 않았으며 교육 보급의 지체로 문맹률마저 높은 상황에서 보통선거 및 민주주의의 실현이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일종의 혁명적 과도기를 두어 민주주의를 단계적으로 완성시켜 나가겠다는 발상이 아주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국민당의 이상과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단계적 건국론이 결국 일당독재 정당화에 악용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처럼 해당 서적은 얇은 소책자 분량이지만 1920년대 후반 중국국민당의 주장과 현실 인식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훌륭한 자료이다. 나아가 교육사와 국민당사를 넘어 근대 중국의 혁명과 역사적 전개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근대 중국의 교과서와 중국의 근대(2021)